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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뒤라 시야가 아주 맑았다
예로부터 신선이 다스린다는 풍광 좋은 단양 골이다.
나를 설레게 한 건,,,,
단양팔경의
제비봉도 아니고, 구담봉이나 옥순봉도 아니다
바로
지폐 속에 빛나는 옛 선비 퇴계 이황의 러브스토리가 있는 충주호였다.
중국의 소생팔경보다 더 아름답다는 단양팔경은 조각조각 펼쳐놓은 신의 예술품이다.
천연의 바위가 있고,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숲이 있고, 맑고 넉넉한 호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선경에 든 느낌이다.
만물상 같은 바위 숲에 몸집이 우람한 장군봉(남편봉)이 있다.
그 옆에 아담한 첩봉,(妾峰), 심사가 뒤틀리는지 고개를 돌려 앉은 처봉(妻峰),
부처도 씨앗을 보면 돌아앉는다고 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이 얄미워 팽 토라져 앉았다는 바위 처봉의 모습이 재미있다.
생긴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다.
질투는 곧 아름다운 사랑이려니.
호반을 에워싸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붉은 무덤 하나가 눈길을 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애첩 안두향의 무덤이다.
조선시대 두터운 신분의 벽으로 이룰 수 없는 두 분의 사랑은 유람선 안내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다.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고을 관기였던 그녀와의 만남은 자연스런 일이다.
단양의 아름다운 산수에 반해 숨은 명승지를 찾아 산천을 누빌 때 그림자처럼 함께 했던 여인이었다니.
그들의 사랑이 단양팔경을 낳게 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선생의 연보를 살펴보면 가정적으로 몹시 혼란했던 때였던 것 같다.
스물 일곱에 첫째 부인을 잃었고, 마흔 여섯에 두 번째 부인마저 사별하고,
마흔 여덟, 단양으로 내려온 그 해는 둘째 아들마저 잃었다.
침식을 잊고 학문에만 매달려 심신이 극도로 병약했던 태풍에 흔들리는 한 그루 거목이었다.
만인이 우러러보는 명예와 권력을 가졌지만 여자 앞에 남자는 영원히 미완의 존재가 아닌가.
고독한 중년 선비와 청순가련한 애송이 기생.,,,
그들의 꿈같은 사랑은 육 개월로 막을 내리고,
다른 임지로 발령 받은 선생은 기약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큰 나무아래 그늘은 깊고, 밝은 등불아래 어둠은 더욱 짙은 법이다.
어린 기녀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님은 무심하게 떠났다.
울며불며 매달려 때를 쓸 수도 없는 기생의 처지가 얼마나 서러웠을까.
일편단심 임을 사모했던 여인은
이황선생의 부고소식에
고귀한 생명을 강물에 던져 정절을 지켰다.
이승에서 못다 피운 사랑의 불꽃, 애달픈 기녀의 한이 하늘에 사무쳤던가.
그녀의 무덤에는 430년이 흐른 지금도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다.
아!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황 선생의 생애를 돌아보면 그 시대 보기 드문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보다 가문의 체면을 중시했던 조선시대 대가 댁 가문에서 홀로 된 며느리를 개가시켰다.
여자를 낮추어 망실(亡室)이라 했던 중국예법을 고쳐 고실(故實)이라 했고,
계모를 홀대하던 법을 고쳐 적모(嫡母아버지의 정실)라 부르게 했다.
집안의 참극으로 정신이 혼미한 권질의 딸을 선생 나이 서른에 둘째 부인으로 들였다.
제상에 차려진 음식을 함부로 집어먹고, 부부간의 잠자리를 예사롭게 발설하여 어른을 난처하게 했다.
헤어진 흰 도포를 빨간 천으로 기워주는 의복을 입고 나섰다가 주위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지만
정작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어넘겼다니. 모자라는 부인을 나무라지 않고 자식처럼 아끼고 감싸주었다.
선생은 유달리 매화를 좋아했다
두향과 헤어질때 그녀가 선물했다는 매화,,,
선생이 임종하던 날,
늘 머리맡에 놓아둔 매화(梅花盆)에 물을 주게 했다.
환자가 거처하는 방안의 탁한 공기가 민망하니 화분(梅兄)을 옮겨 주라 일렀다.
그만큼 꽃 한 그루도 아끼고 정을 쏟았던 넉넉하고 따뜻한 어른이였다
하지만
그는 알기나 할까?
자신을위해 사랑을 바치고 꽃다운 생명을 버린 여인의 가슴아픈 사랑을,,,,,,,,,
붉은 무덤앞에서는 유람선도멈추어 숨을 죽인다.
한데 나는 철없는 상상을 한다.
생명을 던져도 좋을 그런 사랑이라면 사양하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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