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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퇴원하고 나니 가을은 익을대로 다 익어서 떨어지고,
그 떠나려는 가을을 잡느라 온 산이 등산객과 단풍으로 요란하다.
나도 보내기 싫은 가을을 잡아보려 부랴부랴 따라나섰다.
그리고
내가 본 고즈넉하면서도 애잔한 가을~
바로 경주 보문동 진평왕릉과 청송 주산지의 가을이다.
천년 넘은 왕릉을 지키고 있는 고목과
백여년이 넘도록 물속에 뿌리를 두고 견디고 있는 왕버드나무가 애잔하다 못해 경건하게 다가온다.
그 나무들이 기운 빠진 내게 말을 건다,,,
견뎌라.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외로움도 견디고,
오금에 바람드는 참혹한 계절도 견뎌라.
밑 드러난 쌀통처럼 무거운 가난도 견뎌라.
죽어도 용서못할 어금니 서린 배신과,
구멍뚫린 양말처럼 허전한 불신도 견디고,
구린내 피우고도 우뭉 떨었던
생각 할 수록 화끈거리던 양심도 견뎌라.
어깨 너머로 글 깨우친 종놈의
뜨거운 가슴같은 분노도 꾹 누르고,
싸리나무같은 가슴에 서럽게 묻혔던 가을배꽃처럼 피어나는 꿈도 견뎌라.
들판의 농부가 작은 등판으로 온 뙤약볕을 견디듯.
너의 평생이 나의 천년 아니겠느냐
어느시인이 복잡한 마음에 절에 갔다 내려오다 마주친 천년묵은 은행나무를 보고 지은 시라는데,,,
나도 이 오래된 고목을 보니 문득 이 글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자글자글 주름같은 늙을대로 늙은 가지하나가 내게,
나는 이렇게 견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