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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고성이씨 종택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조 건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라면,
고성이씨 종택인 임청각은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건물이다.
임청각의 '군자정'의 현판은 퇴계선생이 20세의 약관에 쓴 글씨이며 정자에는
옛 명현들의 시판이 아직도 걸려있어 그때를 연상케 한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율곡(栗谷) 이이(李耳),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선생 등의 시판(詩板)이 그것들인데
임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시(詩)도 있다.
이처럼 임청각은 조선시대의 문장과 도덕을 중심으로한 자녀 교육에 힘썼던 요람(搖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임청각 대들보 아래는 수많은 석학(碩學)들이 배출되었으며
특히 3대에 걸쳐 7명이란 독립투사(獨立鬪士)가 태어나 눈부신 활약(活躍)을 한 것은 전국에서도 이집뿐이니
석주(石洲) 이상용(李相龍)[本名:李象羲] 선생과 동생, 아들, 손자 그리고 조카 분들이다.
임청각의 좌향(坐向)은 정동향[酉坐卯向]으로 내수(內水)의 진용수(進龍水)로 풍수설(風水說)에 의한
길기(吉基)로 이름나 있다.
이 집의 동북쪽 모퉁이에 방 한 칸은 예로부터 정승을 낳는 방이라고 하는데
1930년까지 벌써 두 사람의 정승(政丞)이 났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 집의 면모를 두루갖춘 고가로
이 집터는 신라시대 고찰인 법흥사의 구지(舊址)라고 한다.
지금도 종택 앞에는 당시의 사찰 7층전탑이 남아 있고 집언저리에는 와당(瓦當)이 가끔 출토(出土)되기도 한다.
안동에 사는 고성 이씨 문중은 임청각, 탑골종택 외에도 귀래정, 반구정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임청각>
개목(犬項)다리 건너보면 우뚝선 임청각
워낙 큰 기와집 도깨비가 나온다나!
어쩐지
그러 하더라.
구십구 칸 빈집이.
이명(李洺)선생 당호(堂號)를 퇴계가 약관에 쓴
유좌묘향(酉坐卯向) 군자정(君子亭) 안동팔경 하난데
명현들
남긴 시판은
옛날만이 그립고.
주손(冑孫) 석주(石洲) 삼대(三代)가 독립운동 고국 떠나
만주(滿洲) 땅 서간도서 한 많게 흘린 눈물
임청각
용천수 되어
두레박에 넘친다.
고성이씨는 한국의 성씨로 한문제(漢文帝)때 사람인 반(槃)의 24세손인 이황(李璜)에서부터 유래되었으며
본관은 경상남도 고성이다.
고성의 과거 지명을 따 칠성이씨라고도 불린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고성 이씨로 분류한 84,383명과 철성 이씨로 표기한 4871명을 포함하면, 총 89,254명으로 조사되었다.
고려말과 조선초 많은 문관 무관을 배출했고,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말 최고 명필이자 단군세기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행촌 이암 (李嵒: 1297~1364),
세종 때 청백리로 좌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1368~1429),
조선 성종 시절 청파극담으로 알려진 이육(李陸:1438∼1498) 등이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전 국무총리이자 제 16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이한동 등이 있다
그리고나도 있다
나는 자랑스런 고성이씨 참판공파 30세손이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