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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은 1780년 7월 8일 요동벌판을 보고서

그 유명한 '호곡장론'을 쓰게 된다

지평선이 펼쳐진 요동벌판을 보고 자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마에 손을 얹으며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 번 울어 볼만하구나." 하고 장탄식하는 이 부분이야말로

그의 감각과 통찰이 빛나는 대목이다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 보고 발도 펴 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 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 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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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문장과 사유가 돋보이는 명문에 속한다.

1200리에 걸쳐 아득히 펼쳐져 있는 요동벌판,

열흘을 가도 산이라곤 보이질 않는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면서

연암은 마치 태초의 시공간에 들어선 듯한 경이로음을 느낀다.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는 건 바로 그런 존재론적 울림의 표현이다.

동시에 그것은 문명론적 충격이기도 했다.

요동의 드넓은 스케일과 마주하는 순간 연암은 자신이 얼마나 좁고 답답한 변방에

갇혀 있었던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갓난아기의 울음에 대한 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연암이 보기에 갓난아기가 우는 건 슬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니다.

바로 열달동안 엄마 뱃속에 있다가 넒은 세상으로 나와 사지를 마음껏 펴게되자

그 감동과 환희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존재와 삶에 대한 무한긍정으로서의 울음인 것.

세 페이지에 걸친 '호곡장론'은 그 한마디 한마디가 요동벌판보다 더 장대하고 감동적이다

"눈물이 칠정(七情)중 슬픔에만 있겠는가?

눈물은 기쁨(희,喜) 노여움(노 怒) 슬픔(애 哀) 두려움(구 懼) 사랑(애 愛) 싫어함(오 惡) 바람(욕 慾)

칠정 모두에 있다" 라는 말은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자유로운 시각을 확연하게 전해 주고 있다

인간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야말로 세상 살아가는 지혜의 출발임을 그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오대산 월정사에 다녀왔다

동해안을 쭉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오대산이 보였고

월정사 옆 전나무 숲길이 눈에 들어 왔다

평균수령 80년,

1700그루의 전나무들이 1000년간

월정사를 지키고 있다하여

'천년의 숲' 이라 불리워 지고 있다

비가 온 뒤라서 월정사 계곡물은 맑다 못해

푸르고 시리었다

틈만 나면 방방곡곡 어디든지 다 걸어다녀보고 싶은

이유 또한 230년 전 나를 반하게만든

한 선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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