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응 /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니 가을은 익을대로 다 익어서 떨어지고, 그 떠나려는 가을을 잡느라 온 산이 등산객과 단풍으로 요란하다. 나도 보내기 싫은 가을을 잡아보려 부랴부랴 따라나섰다. 그리고 내가 본 고즈넉하면서도 애잔한 가을~ 바로 경주 보문동 진평왕릉과 청송 주산지의 가을이다. 천년 넘은 왕릉을 지키고 있는 고목과 백여년이 넘도록 물속에 뿌리를 두고 견디고 있는 왕버드나무가 애잔하다 못해 경건하게 다가온다. 그 나무들이 기운 빠진 내게 말을 건다,,, 견뎌라.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외로움도 견디고, 오금에 바람드는 참혹한 계절도 견뎌라. 밑 드러난 쌀통처럼 무거운 가난도 견뎌라. 죽어도 용서못할 어금니 서린 배신과, 구멍뚫린 양말처럼 허전한 불신도 견디고, 구린내 피우고도 우뭉 떨었던 생각 할..
한가위소감 (디오니소스님) 아직도 명절 앞에서 마음 설레면 유치할까? 고무신이나 송편을 향한 어린날의 열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런 작고 소박한 기쁨들의 상실이 나의 성숙일까? 실은 내 마음이 그만큼 무뎌진 게 아닐까? 어떻든 추석엔 맑은 하늘에 달이 뜬다. 가을 하늘의 밝은 달을 바라보는 흥분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아름다운 소녀는 다 가버렸지만 한가위 달만은 밤새도록 창너머에 서 있어 다행이다. 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Thales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다 실족을 했다고 한다. 목적을 따지기 전에 무엇엔가 몰입하는 경지가 좋다. 이번 한가위에 특별하게 달을 바라보다 넋을 잃어보자. 우리들의 영혼, 달빛에 젖도록 내버려두자. 누가 알아요? 우리도 달빛처럼 청순해질지. 클레오 몰입을 통해 행복한 기분을 느..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때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서정주님의 시예요 휘영청 밝은 달을 보니 생각이 나서~ 어릴적 어머니와 언니와 툇마루에 앉아 송편 빚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예쁘게 빚어야 예쁜딸 낳는다고 말씀하시던 곱고 단아하셨던 어머니가 보고싶습니다 디오니소스 : 항상 곱고 단아한 글을 선물해주는 클레오님의 출현, 참으로 반갑습니다. 어머니는 무릇 어떤 형상으로든 보고 싶은 얼굴이오 기억이지요. 저는 추석 전날밤 꿈에 저희 아..